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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대학내일] 과거 속에 사는 걸까요.   2016-11-17 16:07:54     - written by 관리자
작성자: 봄

  한 남매가 있었습니다. 5살 오빠는 4살의 여동생이 사랑스러워 매일같이 팔베게하며 재우고 껴안아줬어요. 그러다가 여동생이 태어났죠. 두 여동생은 사이좋게 놀았지만 오빠는 두 여동생과 노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남매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즈음에는 매일같이 싸움이었어요. 여동생은 오빠에게 맞았고, 종종 유리창이 깨지고 방문이 깨질 정도로 심하게 다퉜어요. 그 때문에 아버지는 남매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때렸고, 어머니는 충격요법(설탕물을 진하게 풀어서는 쥐약이라며 마시고 너 죽고 나 죽자 하셨죠)을 쓰신 적도 있죠. 그 때, 울며불며 매달리는 여동생과는 달리 이미 속임수 임을 알고 있던 오빠는 태평하게 TV를 보고 있었어요. 오빠는 중학생이 되었고, 남매가 서로 얼굴을 부딪치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오빠와 두 여동생의 싸움은 그치지 않았어요. 보다못한 어머니께서는 오빠가 들어오는 저녁시간이 되면 불 끄고 자는 척을 하라며 막내에게 타일렀죠. 오빠가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막내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는 척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방문을 열어 막내를 보더니 자는 척 한다며 욕을 남겼죠.(그 후, 막내는 성인이 되어서도 밤에 오빠의 계단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 긴장을 합니다.) 또 막내는 어떤연예인을 좋아했는데 그 연예인만 나오면 오빠는 채널을 돌려버렸어요. 막내는 종종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언니와 오빠는 사이좋게 지냈을 것이라며 생각했습니다. 오빠가 고등학생이 되고 부터는 얼굴을 보는 일이 거의 사라졌어요. 오빠가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시간이 흘러, 막내가 오빠와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둘째도 같은 지역에 취직하면서 비로소 3남매는 다시 모이게 되었어요.

   하지만 시간은 3남매의 갈등을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두 여동생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자매가 되어갔지만, 오빠와 두 여동생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죠. 오빠는 오빠대로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는 동생들에게 화가 나 있었고, 둘째는 둘째대로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도 사과 한 마디 없는 오빠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셋째는 셋째대로 나쁜 기억만 가득한 오빠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 지 몰랐습니다. 더구나, 한 지붕아래 살아가면서, 컴퓨터, 담배, 설겆이 등등의 사소한 문제들까지 충돌하고는 했습니다.

   막내에게 오빠는 자신의 이름 한 번 다정히 불러준 적도 없고, 배려심을 모르는 그저 자기 생각대로 나를 강요하는 사람이었고, 오빠에게 여동생은 자신을 우습게 알고, '넌 알 필요도 없어'라는 식으로, 묻는 말에도 대답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막내는 남자와는 눈도 잘 못 마주치고, 아무 말이 없어지는 컴플렉스가 있는데 그게 모두 아버지와 오빠영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화목하게 지내고자 오빠와 막내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관계를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죠. 노력이라고 하기에도 좀 부끄러운 수준일지도 모르겠네요.
  
   막내가 접니다.
  
   어제는 컴퓨터에 에러가 생긴 일로 싸웠습니다. 오빠는 컴퓨터에 에러가 왜 생긴 거냐며 화를 냈고, 헤드폰을 끼고 있던 저는 그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오빠는 제가 또 자신을 무시한다며 불같이 화를 냈고, 왜 화를 내는지 알게 된 저는 본능적으로 모르는 척(컴퓨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했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부팅했을 때부터 에러는 이미 있었으니 그건 제 탓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오빠는 제가 거짓말 하고 있다며(컴퓨터를 고장내고도 내지않은 척하는) 또 다시 거짓말쟁이로 몰아부쳤고, 약간의 술기운이 있던 오빠는 화가 달아오를데로 달아올라 방문을 차고(제가 방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만) 온갖 욕을 퍼붓더군요.

   남매가 더 이상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며 오빠는 셋이 얘기를 하자더군요. 불만을 서로 얘기해 보자더군요. 저는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아직은 오빠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오빠는 미안하단 소리는 고사하고, 왜 항상 과거얘기만 꺼내냐며 화를 내고는 합니다. 확실히 과거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어린 시절에 철이 없었지'라며 웃어넘길 것을, 언니도 어린 시절에 연연하지 않는데, 저는 유독 어린 시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아무도 이런 이야기 들어주지 않아요. 친구들도 자신의 가족을 욕하는 일이니 들어주면서도 불쾌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부모님께는 걱정끼칠까 말할 수 없고, 작년에 집단 상담을 했을 때 몇 번이고 했던 얘기인데 상담선생님을 찾아가 같은 이야기 반복하기도 부끄럽습니다. 이런 이야기 했을 때도 오히려 소심하다는 평가만 몇 번이고 되돌아왔을 뿐인 걸요. 그리고 이제는 정말 소심하다고 느껴져요. 한심하죠. 슬픈 것은 화가 나지 않아요. 대인관계나 장래문제로 최근 우울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런 일까지 있고 나니 심장이 뻥 뚫린 것 같이 횡하고, 무기력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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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님.

상담이나 집단 상담에 익숙하신 거 보면 아마 심리학 관련된 전공을 하시나 봅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을 보면 제가 공부하던 때가 생각나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열정과 순수함,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이 있었죠. 좋은 공부하시는 것이니까 중간에 힘든 일이 있더라도 다시 한 번 힘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심리학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 자신은 사는 게 그리 신나지 않아서 심리학을 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나에 대해서 공부하고 많은 내담자들을 보고 내 수련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뭘 해도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전 굉장히 자유스러운 느낌을 가졌지요. 어떤 걸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 적어도 이런 느낌이 들 때까지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분이 꽤 괜찮습니다.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대학원 때는 암울했습니다. 심리검사 결과를 보고 괴롭지 않냐고, 상담해주겠다고 덤비는 사람이 없지 않나,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다고 기분 나빠 하는 사람이 없지 않나, 앞으로 넌 이렇게 살거라고 예언하는 사람이 없지 않나. 저도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모두들 서푼짜리 심리학으로 스스로 좌절하고 남을 평가해 대었지요. 만약 봄님이 자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스스로 좌절하고 남들이 한 평가를 스스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그것도 나쁜 의미로 말입니다.

   봄님은 실제로 소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앞으로도 소심하리라는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일반 회사에서 영업사원을 보면 대개 사교적이고 외향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의 탑 세일즈맨을 보면 원래는 내성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내성적이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그래 이걸로 승부를 보자고 마음만 먹으면 외향적인 사람보다 더 장점이 많다는 것이지요. 고객의 마음을 더 잘 알고, 더 치밀하고, 더 신뢰를 준다고 합니다. 이건 제가 어느 탑 세일즈 맨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겁니다. 소심한 것을 조금만 변형시키면 “세심하고 사려 깊은”이란 형용사가 됩니다. 상담 장면에서는 중요한 자질 중에 하나지요.

   오빠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는 분명히 과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렸을 때부터 오빠에게는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머리로, 감정으로, 몸으로 학습이 되었을 겁니다. 콤플렉스니 과거니 하는 것은 정신분석에서 많이 쓰는 용어이지요. 인간의 정신세계에 관련한 학문에서 정신분석의 공헌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 자신도 첫 번째로 매혹당한 이론이 정신분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입니다. 오빠를 과거부터 피해야했던 이유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있는 것이고, 지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봄님 앞에 상상으로 오빠를 앉혀 보시지요. 그리고 오빠가 이야기 합니다. 거짓말쟁이라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십니까? 과연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과거 이야기일까요?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라고 말해주세요.

“더 이상 그렇게 몰아붙이지 말라고 이야기 하십시오”, “잘 지내고 싶으면 나만 사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빠도 사과해야 한다고”고 말해주세요.

그 전에는 진정한 화해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직접 하실 수 없을 겁니다. 이제까지의 세월 동안 오빠는 이런 이야기를 피하려 했을 터이고 봄님도 그걸 내버려 두셨을 겁니다.

상상 속에서 하는 대화이지만, 봄님이 말하고 싶은 것이 진짜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가슴에서 반응하는지 알아차려 보시기 바랍니다.

봄님. 바야흐로 봄입니다. 개나리처럼 노란 옷을 입고 봄기운을 느껴보시기 바래요.

[출처] 과거 속에 사는 걸까요.|작성자 한국심리건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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